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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가훈의 의미를 이제서야 알게 되었다정성스런 헛소리 2021. 1. 15. 00:36
지금은 결혼해서 부모님과 떨어져서 살지만, 어릴적 우리집에는 가훈이 벽 한편에 걸려있었다.
거실에서 주방으로 들어가는 입구 바로 옆에 걸려있던 가훈은 노랗게 색이 바랜 A4 용지에 프린터로 출력되었고 심지어 접혔던 자국도 있었다. 어릴 때라서 잘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어느날 갑자기 걸렸다가 언젠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요즘 어린 친구들도 할지 모르겠지만, 예전에 학교에서 담임선생님이 숙제로 가훈과 의미를 적어오라고 했다.
어린 마음에 아빠한테 가서 가훈이 뭐냐고 물어봤었고, 꾀죄죄해 보였던 종이가 들었던 액자를 보며 가훈이라 말씀하셨고, 의미도 말씀해주셨지만 잘 이해도 안됐고 그냥 불러주는대로 적어서 숙제를 냈었다. 그 덕분에 그 때의 가훈이 기억이 난다.
누군가 해야할 일이라면
내가 한다.
해야 할 일이라면
바로 시작한다.
어릴 때라서 놀기 바뻤으니 그렇게 의미가 와닿지 않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아빠가 살면서 느낀 바를 적으셨던 것 같다.
사회인으로 회사 생활을 4년째하고 결혼 생활도 3년차에 접어든 시점에서, 그 때 그 가훈은 집에서도 회사에서도 적용할 수 있는 내용이다.
사람은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지 않는가, 어디에서든 누군가와 연을 맺어서 지내게 되는데, 주변 사람들에게 이쁨을 받으려면 아빠의 가훈대로 살면 된다. 첫번째 줄은 솔선수범해서 적극적으로 행동하라는 의미인데, 까딱 잘못하면 속된 말로 호구잡힐 수 있긴 하지만, 나서서 열심히 하는 사람을 싫어할 사람이 있을까 싶다. 두번째 줄은 행동력을 가지라는 말인데, 빨리 시작해서 끝을 내서 결과를 내라는 것으로 이해된다.
내가 부족한게 것 중에 하나가 실행력이다. 바로 시작하지를 못하고 시작하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해야지 마음 먹고 메모해 놓았다가 까먹기 일쑤고, 기억이 난다 해도 앞서서 걱정하면서 이것저것 알아보다가 느즈막히 시작하곤 한다. 나와 반대로 와이프는 행동력이 좋은 사람이다. 할일이 생기면 바로 시작하면서 끝까지 밀어부쳐서 잘 끝낸다. 그렇다보니 와이프는 항상 무언가를 하고 있다. 아무리 쉬엄쉬엄하라고 쉬라고 해도 열심히 한다. 집에 있으면 아무것도 안하고 누워있는 나하고는 너무나도 다르긴 하다. 내가 본받아야 할 사람이 옆에 있다보니 나도 조금이나마 영향을 받는다. 나도 집에서 마냥 쉬거나 놀지 않고 뭐라도 하나 더 하려고 한다. (혼자 놀면 왠지 찔린다)
최근에 코로나로 인해서 집에 있는 시간이 늘어났는데, 집안일은 가짓수도 많고 해도해도 끝이 안나지 않는가.
부부로써 같이 생활하는 공간이니까, 최대한 할 수 있는 건 하려고 한다. 그런데 나와 와이프가 집안일로 느끼는 일의 범주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집에는 신발장을 공중에 떠있어서 아래에 공간이 있어서 자주 신는 신발을 놔둘 수 있다. 나의 경우에는 신발을 놓는 자리는 계속해서 신발이 놓여질 것이니까 어차피 또 더러워 질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청소를 해야할 장소로 생각되지 않았었다. 그런데 와이프는 신발을 신고 나가면 신발이 있었던 자리가 더럽게 보여서 청소를 하곤 했었다. 각자의 생활양식이 다르기도 하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달라서 일 수 있지만, 중요한 점은 일로써 인식하는 것이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 내가 해야할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내 상사(와이프 포함)가 생각하는 내가 해야할 일은 다른 것이다.
그럼 다시 가훈으로 돌아가보면, "누군가 해야할 일"에서 일은 내가 익숙하게 해왔던 일이 아니라 "누군가" 즉, 다른 사람의 일 또는 다른 사람이 봤을 때 일로 인식이 될만 한 일을 의미할 것이다. 다시 말해서 "누군가 해야할 일이라면 내가 한다."는 다른 사람이 해야할 일을 먼저 발견하면 솔선수범해서 하라는 말이다. 집에 왔는데, 바닥에 쓰레기가 떨어져 있으면 줍고 얼룩이 묻어 있으면 닦아 놓으면 와이프도 편하고 기분이 좋을 것이다. 회사에서 담당자가 할당이 안된 업무를 발견했을 때 처리 해놓거나 업무가 몰린 동료의 일을 받아서 대신 처리해 주면 신뢰감을 주는 동료가 될 수 있다. "해야 할 일"은 나한테 할당된 일을 의미한다. "해야 할 일이라면 바로 시작한다."는 일을 함에 있어서 늑장을 부리지 말고 빨리 착수하여 데드라인 안에 빨리 하라는 의미일 것이다. 와이프가 무언가 해달라고 했을 때 빨리 안해주면 와이프가 화가 나지 않겠는가. 마찬가지로 회사에서 나에게 주어진 업무는 빨리 끝내야 상사가 좋아하고 나를 능력있게 볼 것이다.
어릴 적에는 별로 와닿지 않았던 우리집 가훈이 이제는 사라졌지만, 커서 보니 도움이 되는 말이였고, 아빠가 살아가면서 느꼈던 점을 적어 놓은 것 같아서 마음 한 구석이 찡하기도 한다. 어릴 때는 엄청 어른 같았던 아빠의 생각을 조금이나마 공감을 하게 되는 걸 봐서는 나도 조금은 어른이 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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